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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억압·불협화음·상실로 짜인 세 여성의 스타일

by 미니네즈 2025. 9. 23.

『디 아워스』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시간을 두고 조용히 켜켜이 쌓아 올린 감정의 구조물이다. 세 명의 여성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결국은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이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가.”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보면, 이 영화는 단지 서사나 연기력으로만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각 인물의 옷, 그 색과 실루엣, 섬세한 주름 속에 인물의 고민, 저항, 체념이 녹아 있다. 『디 아워스』는 시간의 레이어 위에 감정과 옷이 교차하는 가장 조용한 방식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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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 사진출처 : 나무위키

버지니아 울프 – 구조와 무너짐, 단단한 옷 속의 균열

1923년을 배경으로 한 버지니아 울프의 장면은, 당시 여성에게 요구되던 ‘질서’의 복식 안에 갇혀 있다. 그녀는 단정한 롱스커트, 얇은 블라우스, 억제된 색채의 카디건을 입는다. 이 복식은 사회가 그녀에게 요구한 역할, 즉 지적인 아내이자 여성으로서의 외형을 구성한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보면, 그 복장은 결코 단순히 '단정함'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된 감정의 보호막이다.

버지니아는 복식의 틀 안에서 무너진다. 스커트는 길고 무겁고, 셔츠는 목까지 잠겨 있다. 그녀는 옷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유지하려 하지만, 손끝의 불안, 시선의 흐트러짐, 단추를 잠그는 동작의 떨림 속에서 내부의 균열이 드러난다. 스타일이 감정을 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억제하는 감정이 스타일에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녀의 옷이 내면을 보호하려 하지만, 동시에 파열을 가시화한다는 점이다. 『디 아워스』 속 버지니아는 감정을 직면하지 못한 여성이 아니라, 감정을 견디기 위해 옷이라는 장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장벽의 패턴, 바느질, 소재는 점점 무거워진다.

라우라 브라운 – 피팅되지 않은 삶, 감정을 누른 복식

1950년대 미국의 주부 라우라는 사회적으로 ‘완벽한 여성상’ 안에 있다. 그녀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며, 파마를 한 헤어스타일과 단정한 메이크업을 유지한다. 겉으로 보기엔 흠잡을 데 없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보면, 그 옷은 라우라에게 맞지 않는다. 마치 남의 인생을 대신 입은 사람처럼, 그녀의 복장은 그녀의 감정과 충돌한다.

그녀의 원피스는 너무 꽉 끼고, 색은 너무 밝고, 실루엣은 지나치게 여성스럽다. 라우라는 그 옷을 입으며 숨을 쉬지 못하고, 결국 욕조에 앉아 조용히 무너진다. 영화 내내 그녀는 스타일을 유지하려 하지만, 점점 복식은 그녀의 감정을 압박하는 구조로 변한다. 디자이너로서 이는 '감정과 스타일이 맞지 않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협화음'의 예시다.

라우라의 장면은 특히 색채가 강렬하다. 부엌의 파스텔 톤, 아이의 옷, 케이크의 장식들. 이 모든 시각적 장치는 그녀의 감정과 완전히 분리된 시공간이다. 그녀는 스타일의 틀 속에서 점점 밀려난다. 그리고 그 탈출은, '옷을 벗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외출용 코트를 걸치고,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서는 장면은, 스타일이 역할에서 해방으로 바뀌는 전환점이다.

클라리사 본 – 현대의 자유, 그러나 여전히 남은 틈

2001년의 클라리사는 겉보기에 가장 자유롭고, 가장 자기 스타일을 가진 여성처럼 보인다. 그녀는 중성적인 셔츠와 슬랙스, 실크 스카프, 부드러운 색조의 아우터를 선택하며, 섬세하고 세련된 뉴요커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보면, 그녀는 복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결코 완전한 안정이 아니다.

클라리사의 스타일은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이어 붙이고 있다. 리처드를 위해 준비하는 꽃과 케이크, 버지니아 울프의 책, 그리고 파티를 위한 정갈한 복식.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여전히 누군가의 ‘댈러웨이 부인’이기를 요구받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여전히 타인을 위해 스타일을 조정하고 감정을 눌러 담는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클라리사의 복식은 ‘감정을 지지하는 기능적 스타일’이다. 과거의 여성들과 달리, 그녀는 복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조차 과거로부터 온 감정의 연속선 위에 있다. 셔츠의 주름, 스카프의 무늬, 립스틱의 색감 하나하나가 그녀의 감정 상태를 반영한다. 특히 마지막에 리처드와의 대면 이후 그녀가 입은 옷은, 스타일이 더 이상 역할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감정의 수용, 상실의 인정,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남겨진 사람의 스타일이다.

결론: 스타일로 엮은 시간, 감정의 직조물

『디 아워스』는 세 여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동시에, 세 겹의 옷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대가 다르고 역할이 달라도, 이들의 옷은 모두 감정을 말한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이 영화를 바라보면, 스타일이 단순히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때로는 파괴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버지니아의 옷은 무너지는 마음을 가리고, 라우라의 옷은 맞지 않는 삶을 강요하고, 클라리사의 옷은 자유 속에 남은 상실을 껴안는다. 그 옷들 위에 흐르는 시간, 그 시간 속에 남겨진 감정. 『디 아워스』는 스타일이 기억을 품고, 옷이 감정을 견디는 방식으로 삶을 풀어낸다. 우리는 결국 옷으로도 살아가고, 옷으로도 견디며, 옷으로도 기억한다.

『디 아워스 (The Hours, 2002)』 시청 가능 OTT 플랫폼 (2025년 9월 기준)

플랫폼 제공 여부 비고
왓챠 (Watcha) ✅ 시청 가능 감성 영화 테마 큐레이션
유튜브 영화 / 구글 TV ✅ 대여/구매 가능 HD 화질, 자막 제공
네이버 시리즈온 ✅ 개별 구매 가능 모바일/PC 감상 가능
넷플릭스 (Netflix) ❌ 미제공  
디즈니+ (Disney Plus) ❌ 미제공  
왓챠피디아 기준 평점 ⭐ 4.2 / 5.0 감성 드라마, 여성 중심 영화

*OTT 정보는 변동될 수 있으며, 시청 전 각 플랫폼에서 최신 여부 확인을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