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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무너지는 욕망 위의 스타일 판타지(Babylon, 1920년대 패션, 영화 스타일 해석)

by 미니네즈 2025. 9. 19.

『바빌론』은 말 그대로 폭주하는 영화다. 1920년대 할리우드 초창기의 욕망, 광기, 몰락, 쾌락, 그리고 음악과 스타일이 한꺼번에 폭발한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보면, 이 광란의 화면 속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옷이다. 배우들의 움직임, 무너지는 무대, 끝없이 이어지는 파티. 그 모든 시퀀스 위에서 옷은 인물들의 감정과 신분, 그리고 시대의 속도를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바빌론』은 단순한 고증을 넘어, 스타일이 내면과 욕망을 어떻게 대변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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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 사진출처 : 나무위키

할리우드가 입은 옷 – 시대와 쾌락이 뒤섞인 실루엣

영화의 시작부터 시청자는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파티 장면에 휩쓸린다. 수십 명의 군중이 춤추고 마약을 하고 울고 웃는 그곳, 모든 감정이 뒤섞인 혼돈의 중심에서도 눈을 사로잡는 건 의상이다. 특히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의 스타일은, 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가장 극적으로 대변한다. 그녀는 속이 훤히 보이는 듯한 비즈 드레스를 입고, 새빨간 립스틱과 강렬한 눈빛으로 등장한다. 옷이 과감한 게 아니라, 감정이 과감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옷의 틈새로 흘러나온다.

1920년대 패션이라고 하면 흔히 플래퍼 룩과 프린지 드레스를 떠올리지만, 『바빌론』은 그런 고정된 이미지를 넘어서 감정의 물결처럼 옷을 흘려보낸다. 스타일은 캐릭터의 에너지에 따라 흔들리고, 장면의 리듬에 따라 덧입혀진다. 특히 파티 장면에서 의상은 '캐릭터의 마스크' 역할을 하며, 과장된 디테일로 존재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불안과 상실로 무너지고 있다. 그 이중성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의상이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시대복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정신의 스타일링'을 시도한 작품이다. 컬러는 감정의 기복을 반영하고, 실루엣은 권력과 자유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격렬하게 장식된 드레스도, 조명이 꺼지면 한낱 껍데기처럼 보인다. 『바빌론』은 옷을 통해 ‘욕망의 연기’를 입히고, 동시에 그 연기의 본질을 잔혹하게 폭로한다.

무대 위와 아래 – 캐릭터의 이면을 드러내는 스타일링

이 영화가 흥미로운 또 하나의 지점은, '화면 속과 밖의 스타일'을 명확히 대비시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잭 콘래드는 무성 영화 시대의 전설적인 배우로 등장한다. 화면 속에서 그는 완벽한 턱시도와 포마드 헤어로 무대를 장악한다. 하지만 무대 밖에서의 그는 흐트러진 셔츠와 헝클어진 넥타이, 무너진 발걸음으로 걸어 다닌다. 스타일은 두 얼굴을 가진다. 영화 속 스타의 이미지는 복식으로 봉합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정하지 않다.

마고 로비의 캐릭터 넬리 역시 무대에 설 때와 무대 밖에서의 의상이 극명하게 다르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과장된 스타일로 감정을 과시하지만, 일상이 무너질수록 스타일은 점점 거칠고 마모된다. 머리가 흐트러지고, 옷은 더는 몸에 맞지 않는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이 지점은 ‘스타일의 붕괴가 곧 정체성의 붕괴’와 맞닿아 있는 순간이다.

특히 흑인 재즈 뮤지션 시드니의 의상은 시대적 제약과 인종적 긴장을 동시에 말해준다. 그는 흑백영화 촬영 시 '피부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얼굴에 파우더를 칠해야 한다. 이 장면에서 의상은 권력의 구조를 날것으로 드러낸다. 스타일은 자율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조율하는 장치였고, 의상은 ‘보여짐’을 강요받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바빌론』은 이처럼 화려함 이면의 억압을 복식을 통해 시각화한다. 우리는 옷을 입지만, 동시에 그 옷에 의해 입혀진다.

낭만의 잔재 – 무너져가는 꿈과 마지막 패션의 흔적

『바빌론』의 후반부는 무너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장례식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파티는 끝나고, 할리우드는 유성영화 시대로 전환된다. 이 시점에서 스타일은 더 이상 과시적이지 않다. 오히려 누더기처럼 남은 드레스와, 바랜 색감의 코트, 닳은 구두가 시대의 폐허를 상징한다. 패션은 무너짐의 풍경이 되고, 낭만의 잔재를 떠안은 유일한 기록이 된다.

브래드 피트의 캐릭터는 결국 사라지고, 넬리도 추락하며, 닉처럼 영화 밖에 머무르던 인물은 끝내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그들이 남긴 복식의 실루엣이다. 시대가 어떻게 망가져도, 의상은 그 욕망과 실패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것은 기억의 옷이고, 동시에 망각의 은유이기도 하다.

『바빌론』은 복식을 통해 그 시대의 리듬과 불안을 함께 품는다. 프린지와 스팽글이 떨어지는 순간, 비로소 진짜 감정이 드러난다. 마지막 장면의 어둠 속에서도 그들이 입었던 옷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영화가 가장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감정의 실루엣이다. 무너진 시대의 마지막 스타일, 그것이 『바빌론』의 정서다.

결론: 끝나버린 파티, 옷만 남은 기억

『바빌론』은 화려하고 혼란스러우며, 그만큼 아프고 잔인한 영화다. 그리고 그 감정은 복식을 통해 가장 강렬하게 전달된다. 사람은 떠났고, 무대는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것은 옷이다. 그 옷은 웃고, 울고, 버티고, 포기했던 모든 감정을 기억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이 영화는 ‘스타일은 기록이고, 감정은 옷의 곡선 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만든 작품이다. 화려했던 1920년대가 저물고, 그 속에 있던 인물들이 무너져 내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입고 있던 옷을 기억한다. 패션은 꿈의 포장지이자, 추락의 단서다. 『바빌론』은 그렇게, 옷을 통해 한 시대의 진실을 말한다. 말보다 더 정직한 언어로.

『바빌론 (2022)』 시청 가능 OTT 플랫폼 (2025년 9월 기준)

플랫폼 제공 여부 비고
왓챠 (Watcha) ✅ 시청 가능 감성 영화 섹션, 자막 포함
유튜브 영화 / 구글 TV ✅ 대여/구매 가능 HD 화질, 모바일 가능
네이버 시리즈온 ✅ 개별 구매 가능 자막 제공
넷플릭스 (Netflix) ❌ 미제공  
디즈니+ (Disney Plus) ❌ 미제공  
왓챠피디아 기준 평점 ⭐ 3.9 / 5.0 과감한 연출, 강렬한 미장센

*OTT 정보는 변동될 수 있으며, 감상 전 플랫폼에서 확인을 권장합니다.